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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뾰족한 땅을 걷는 사람(2026)

    대문을 연다. 작은 마당 한편에 붉은 흙을 드러낸 땅이 있다. 손으로 땅을 짚고 긁어내며 가지런히 정리한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주시하며,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따뜻하길 바라며, 뾰족한 것으로 파낸 땅에 여린 잎을 옮겨 심었다. 여러 번 해가 지고 해가 떴으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사방으로 뾰족하게 자라나는 것을 뜯어 먹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내가 되어 뾰족한 발이 자라났다. 대문 밖으로 서툰 걸음을 나선다. 막 자라난 작은 발을 비틀거리며 강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미 세모난 발을 가진 새들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새는 빠른 걸음으로, 큰 새는 기다리는 시선으로 강을 들여다본다. 새들은 뾰족한 부리로 물을 쪼아대며 물고기를 먹었다. 뾰족하게 파인 강은 재빨리 제 모습을 되찾으며 그 흔..

  • 오늘, 기쁘게도 비가 내린다(2025)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이 터진 매미의 허물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빗방울이 하나씩 내리더니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허물을 가르고 내린 비는 매미 우는 소리마저 집어삼켰다. 도시의 소음을 삼킨 매미, 매미의 소음을 삼킨 비. 비를 삼킨 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빗물은 발밑에 동그란 거미줄을 쳐 배롱나무 꽃잎을 붙잡기 시작했다. 붉은 꽃잎에 현혹되어 줄지은 거미줄을 쫓아갔다. 거미줄에 걸린 무수히 많은 허물을 보았다. 어제, 하얀 솜을 받으려 심어 놓은 목화가 죽었다. 지금은 여름이건만 겨울에 잃어버린 하얀 눈처럼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았다. 호미 한 자루 손에 쥐고 땅에 난 것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잔..

  • 네 개의 눈, 한 개의 몸(2025)

    여기, 네 개의 눈이 있다. 첫 번째 눈과 두 번째 눈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보기 위해 눈을 뜨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길쭉한 피부를 잔뜩 위로 들어 올리면 검은 눈동자가 딸려 올라온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눈을 뾰족하게 뜨고 이 두 눈은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간격이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며 움직일 공간을 탐색한다. 라디오 안테나를 세우는 것처럼 두 개의 눈이 아주 길어지고 멀어졌다. 잔뜩 힘을 준 두 눈과 함께 발걸음이 빨라진다. 무엇을 보았기 때문일까? 저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목표가 명확한 듯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는 듯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듯 사납게 나아간다. 아 저 두 눈에 찔릴 것만 같은데. 덩달아 나도 긴장한다. 세 번째 눈과 네 번째 눈이 자라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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