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쁘게도 비가 내린다(2025)

ABOUT/Artist Statement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이 터진 매미의 허물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는데, 빗방울이 하나씩 내리더니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허물을 가르고 내린 비는 매미 우는 소리마저 집어삼켰다. 도시의 소음을 삼킨 매미, 매미의 소음을 삼킨 비. 비를 삼킨 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빗물은 발밑에 동그란 거미줄을 쳐 배롱나무 꽃잎을 붙잡기 시작했다. 붉은 꽃잎에 현혹되어 줄지은 거미줄을 쫓아갔다. 거미줄에 걸린 무수히 많은 허물을 보았다.

어제, 하얀 솜을 받으려 심어 놓은 목화가 죽었다. 지금은 여름이건만 겨울에 잃어버린 하얀 눈처럼 모든 것을 잃은 것만 같았다. 호미 한 자루 손에 쥐고 땅에 난 것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잔악한 행위에 그것의 뿌리는 뽑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그것을 죽인 것이 분명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날 더 많은 것을 죽였다. 호미로 뿌리를 하나씩 뽑아낼 때 말라 비틀어지는 기묘한 괴성이 괴로워 작은 낫을 한 손으로 거머쥐었다. 톱니가 가득한 날카로운 것으로 이름 없는 것들의 머리채를 잡고 한번 두 번 계속해서 베어냈다. 이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때 나는 덜 괴로웠다. 목소리는 땅속에 묻어둔 채 토막 난 허물만 남길 뿐이었다.

‘오늘, 기쁘게도 비가 내린다.’ 

빗물에 그것들의 허물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흐트러져 사라진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의 증언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