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자라나는 손, 2025〉은 새벽의 경계에서 자라나는 손을 통해 살아내기 위한 몸의 반응을 드러낸다. 손과 손톱은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흔적으로 자라난다. 빛이 완전히 도달하지 않은 시간, 손은 절박한 움직임으로 존재를 이어간다.
〈창백한 새벽〉은 새벽의 초록빛과 푸른 나무가 있는 창밖의 풍경, 그리고 고통 속에 머무는 인간의 앙상한 몸을 겹쳐놓는다. 이 창백함은 새벽을 수놓는 빛이자, 고통 속에 머무는 인간의 색이기도 하다. 창 너머 나무는 여전히 살아 있으나, 방 안의 시간은 멈춘 듯 고요하다. 작가는 고통과 치유, 잠과 깨어남 사이를 예민하게 응시하며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잠을 자다가 웅웅 거리는 TV 소리에 눈을 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잔뜩 웅크린 채 깜빡이지도 않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아이가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스무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아이를 기억한다.
비쩍 마른 여자 아이가 누군가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공허한 눈동자의 아이는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멀겋게 웃었다. 나는 너무 슬펐고, 잠에서 깨어났다.
할아버지의 마법 같은 비눗방울에 아이들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오색찬란한 비눗방울은 행복한 놀이이자 그 순간의 꿈이었다
아이들에게 아이마냥 웃으며 눈을 맞추던 할아버지가 어른들에게는 인상을 쓰며 돈을 요구했다. 할아버지에게 비눗방울은 돈벌이의 수단이자 아이들의 꿈이었다. 이상과 현실이 함께하는 할아버지의 비눗방울은 참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