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땅을 걷는 사람(2026)

ㆍABOUT/Artist Statement

대문을 연다. 작은 마당 한편에 붉은 흙을 드러낸 땅이 있다. 손으로 땅을 짚고 긁어내며 가지런히 정리한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주시하며, 너무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따뜻하길 바라며, 뾰족한 것으로 파낸 땅에 여린 잎을 옮겨 심었다. 여러 번 해가 지고 해가 떴으며,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사방으로 뾰족하게 자라나는 것을 뜯어 먹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내가 되어 뾰족한 발이 자라났다. 대문 밖으로 서툰 걸음을 나선다.

막 자라난 작은 발을 비틀거리며 강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미 세모난 발을 가진 새들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새는 빠른 걸음으로, 큰 새는 기다리는 시선으로 강을 들여다본다. 새들은 뾰족한 부리로 물을 쪼아대며 물고기를 먹었다. 뾰족하게 파인 강은 재빨리 제 모습을 되찾으며 그 흔적을 지워낸다. 서쪽으로 흐르는 해와 강을 따라 하얀 몸, 긴 다리의 새는 날아간다.

그날 돌아가지 못한 몸이 있다. 커다란 몸에는 발이 없어서 옆면으로 강의 흐름을 느끼며 동쪽의 푸른 곳으로 향한다. 각진 육면체의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줄곧 그곳으로 헤엄쳤다. 저 위는 열려 있으니 지느러미를 날개 삼아 날아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숨을 멈출 수는 있잖아. 비가 그치고 물살이 약해지는 틈을 타 꼬리로 바닥을 밀어내며 몸을 위로 올렸다. 마침내 그 위로 날아올랐을 때, 또다시 벽, 그리고 또 벽.
벽 너머로 뾰족한 거품이 쏟아진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몸이 툭 떨어진다. 아가미가 스르륵 닫힌다. 해가 지고 해가 뜨는 사이에 그 몸은 하얀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 일을 묵묵히 지켜본 후 뾰족한 발이 조금 더 자라났다. 발이 더 길어져 이곳에 박혀버리기 전에 도망치듯 자리를 옮긴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 일은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걸까. 모래를 한 알씩 세어내듯 발끝이 서서히 땅을 파고든다. 그 아래에 여전히 하얀 거품이 머물고 있다.